'상상 속에서'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2.05.04 부활은 지성으로 하는 것 1
  2. 2012.05.04 지성과 욕망
  3. 2012.05.04 감각기관의 지나침
  4. 2012.05.04 영양섭취와 생식, 그 신성적 직무
  5. 2012.05.04 마광수의 오판
상상 속에서2012. 5. 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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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란 어떤 때에는 사고를 하고 어떤 때에는 사고를 하지 않는 그런 게 아니다. 지성은 그것의 현 상태로부터 분리돼 자유로울 때에 (비로소) 그 자체인 것이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지성만이 영원하고도 불멸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감각을 지닌 지성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데 반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곧 수동적인 지성은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지성 없이는 어떠한 사고도 하지 못한다. <Aristotle's De Anima>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통찰은 부활과 영생, 그 모든 불멸하는 삶에 관한 표현에 적용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진정한 지성이 무엇인가에 달려있다. 뭐가 진리인가.
ἀεὶ γὰρ τιμιώτερον τὸ ποιοῦν τοῦ πάσχοντος καὶ ἡ ἀρχὴ τῆς ὕλης. [τὸ δ' αὐτό ἐστιν ἡ κατ' ἐνέργειαν ἐπιστήμη τῷ πράγματι· ἡ δὲ κατὰ δύναμιν χρόνῳ προτέρα ἐν τῷ ἑνί, ὅλως δὲ οὐδὲ χρόνῳ, ἀλλ' οὐχ ὁτὲ μὲν νοεῖ ὁτὲ δ' οὐ νοεῖ.] χωρισθεὶς δ' ἐστὶ μόνον τοῦθ' ὅπερ ἐστί, καὶ τοῦτο μόνον ἀθάνατον καὶ ἀΐδιον (οὐ μνημονεύομεν δέ, ὅτι τοῦτο μὲν ἀπαθές, ὁ δὲ παθητικὸς νοῦς φθαρτός)· καὶ ἄνευ τούτου οὐθὲν νοεῖ.

Mind is not at one time knowing and at another not. When mind is set free from its present conditions it appears as just what it is and nothing more: this alone is immortal and eternal (we do not, however, remember its former activity because, while mind in this sense is impassible, mind as passive is destructible), and without it nothing thinks. <Aristotle's De Anima 430a: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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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other Version. Tr. by Hicks] But this intellect has no intermittence in it thought. It is, however, only when separated that it is its true self, and this, its essential nature, alone is immortal and eternal. But we do not remember because this is impassive, while the intellect which can be affected is perishable and without this does not think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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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2012. 5. 4. 06:26

지성은 미래를 위해 (행동에) 저항할 것을 명령하지만 욕망은 현재를 위해 (행동할 것을) 명령한다.
<De Anima 433b:5->
// ὁ μὲν γὰρ νοῦς διὰ τὸ μέλλον ἀνθέλκειν κελεύει, ἡ δ' ἐπιθυμία διὰ τὸ ἤδη· φαίνεται γὰρ τὸ ἤδη ἡδὺ καὶ ἁπλῶς ἡδὺ καὶ ἀγαθὸν ἁπλῶς, διὰ τὸ μὴ ὁρᾶν τὸ μέλλον // while mind(νοῦς) bids us hold back because of what is future, desire is influenced by what is just at hand: 

왜냐하면 욕구는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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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2012. 5. 4. 06:25
if the movement set up by an object is too strong for the organ, the equipoise of contrary qualities in the organ, which just is its sensory power, is disturbed; it is precisely as concord and tone are destroyed by too violently twanging the strings of a lyre. <De Anima 424a:30>

감각기관의 작용이 너무 과하면 그 기관에 부여된 양질의 비율이 파괴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감각의 힘이다. 마치 수금 줄을 지나치게 격렬하게 쳐서 정교하게 조화된 음들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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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2012. 5. 4. 06:24
사멸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은 자신이 하나의 같은 것으로 존속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것을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이 가장 기본적인 직무가 바로 영양섭취와 생식이다. <c.f. De Anima 415a:25-415b:9>

그러므로 배고픔이나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본래 속된 일이 아니라 영속적이고도 신적인 것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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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2012. 5. 4. 06:23

καὶ φαντασίαν καὶ ὄρεξιν· ὅπου μὲν γὰρ αἴσθησις, καὶ λύπη τε καὶ ἡδονή, ὅπου δὲ ταῦτα, ἐξ ἀνάγκης καὶ ἐπιθυμία.

and if sensation, necessarily also imagination and appetition; for, where there is sensation, there is also pleasure and pain, and, where these, necessarily also desire.<Aristotle's De Anima 413b: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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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약 신체의 감각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상상과 욕구도 있다. 감각이 있는 곳에는 고통과 즐거움/쾌락(ἡδονή), 그리고 이것들이 있는 곳엔 필연적으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광수의 “그녀를 만나자 내 본능이 어리둥절하니 환해졌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형이상학이 달아났다.” 라는 말은 자신의 형이상학과 본능의 출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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