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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4 신체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매커니즘
  2. 2012.05.28 리바이어던과 성령
말씀 속에서2012. 6. 4.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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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약 800년 가까이 보전돼 온 세계문화유산입니다. 그것이 보관된 곳 바닥에는 숯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숯의 유익함을 선조들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숯 효과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산화 방지와 환원 작용입니다. 사물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힘/복원력이 뛰어나 주위 사물을 활성화 하는 이 숯은 산성 물질이나 식품을 알칼리화 합니다. 또한 인체 체액이나 혈액을 알칼리화 시켜 신선하게 유지해 주고, 식용 숯을 먹으면 산을 중화/해독하여 장내 세균을 죽이고 유효균을 활성화 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 전자파차단 효과, 원적외선과 음이온 방출, 그리고 팔만대장경 주 보본기능인 습도 조절부터 곰팡이 방지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유용함을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 생활 속 보물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를 숯가마에 넣어 구워 검은 덩어리로 재가 되기 이전의 탄소덩어리를 우리는 숯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우리말로 신선하고 힘이 좋다는 뜻을 가지며 영어로는 Charcoal, 즉 China(중국)와 cool(좋다)의 합성어로서 중국에서 약으로 들여온 숯을 서구에서도 복용해보니 좋아져서 그런 단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의 부정한 입을 향해 탄식하자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그 입술에 숯(불)을 가져다 대 정화시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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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서플 | 숯불과 성령 

컴퓨터가 한 과업을 수행하려면 뭔가 입력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키보드, 마우스, 스캐너, 웹캠, 그래픽스 태블릿, 라이트펜 등이 그럴 때 쓰는 입력장치들 입니다. 그리고 그 과업을 결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대로 출력장치가 꼭 필요합니다. 모니터, 스피커, 프린터, 기타 컨트롤러(로봇) 따위 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입력장치들이 있습니다.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들로서 이들을 관장하는 기관들이 있고 그 가운데서도 눈과 귀와 입의 능력은 가장 탁월합니다. 눈․귀는 주로 입력을 담당하고 입은 출력을 겸합니다. 이들 셋은 특별히 마음(noun)에 직결로 달라붙어 있어 입출력 정보를 아주 빠른 속도로 운반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이 셋 중에서도 출력 장치 격인 ‘입’을 놓고 깊은 탄식 속에 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사실은 입을 통해서만 나머지 두 기관의 통제까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순서에 의해 그렇습니다.

입이 곧 마음입니다(마 12:34; 약 3:2-6).

귀는 마음에 있는 내용을 출력할 수 없습니다. 눈도 그렇습니다. 오로지 입만 그 내용을 그대로 운반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것은 입으로도 운반되지 않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마 12:34b). 입이라는 지체를 가리켜 큰 배를 움직이는 작은 키에 비유하는 야고보는 그 작은 것이 온 몸을 더럽히기도 하고 인생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약 3:2-6). 손과 발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마음은 마음 그 자신이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입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것이 곧 마음이기 때문이라는 반증입니다.

입에 있는 말을 고치면 마음이 고쳐집니다(사 6:7b).

이사야 선지자는 영광이 충만한 성전 앞에 서자 가장 먼저 입술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것은 사실 이사야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영광을 본 자가 그 입술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성령께서는 그분의 말(Logos)을 통해서 그 마음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치면 잘 들리고, 잘 보입니다(행 2:1-42).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잘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단단하면 아예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됩니다. 들리지도 않고 볼 수도 없게 되면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즉, 모든 입력 장치가 먹통이 된 상태인 것입니다. 마음을 고치면 잘 들리고 보이게 되며, 또 이해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에필로그 |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입이라는 이 신비로운 지체는 이와 같이 망가진 마음의 내용을 운반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귀와 눈을 고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향해 들어갈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통로를 집도(執刀)하시고 정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그 숯불, 곧 성령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미문(美門)교회 11시 예배 설교요지
2012년 6월3일 성령강림 후 제1주
본문, 사 6: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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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속에서2012. 5. 28.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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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홉스는 그의 역작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를 일종의 인공적 인간(人工的 人間)으로 간주하고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⑴ 국가의 주권은 인공 혼으로 전신에 생명과 운동을 공급한다.
⑵ 장관이나 행정관리는 인공 관절이고,
⑶ 보수와 체벌은 신경이며,
⑷ 개별 가정과 재산은 체력이고,
⑸ 복지는 그 인공적 인간의 과업이다.
그리고 ⑹ 원로들은 인공인간의 기억과도 같으며,
⑺ 형평과 법은 인공적 이성과 의지요,
⑻ 평화는 건강, ⑼ 소요는 질병, ⑽ 내란은 죽음이다.
끝으로 ⑾ 이 모든 것을 결합하고 창출하는 신약(信約)은 이른 바 창세에 신이 말씀하신 ‘인간을 창조하자!’는 명령에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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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일찍이 다니엘이 통찰했던 괴생명체를 서술했던 방식과도 같으며, 다니엘의 진술을 모티프로 재형해낸 요한계시록 속 괴생물들과도 같은 것으로, 일종의 집단 영성이다. 이들 모두가 괴생명체로 묘사되는 것은 그것들이 결국 하나님을 떠난 자율적 집단의 영성이라는 데 그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리워야단이자 베헤못이다.

일찍이 악어나 하마나 뱀으로 혼역된 리워야단이라는 존재가 지닌 문맥들은 모두 이들 최강 파워들이 하나님 권세아래 종속되어 있다는 믿음이었다(c.f. 창 1:21; 출 7:9, 10, 12; 신 32:33; 시 91:13; 욥 3:8; 시 74:13‐17; 89:9‐10; 104:26; 사 27:1; 51:9‐10; 렘 51:34). 구약의 이러한 통찰과 기대감이 신약에 와서 성령의 이름으로 실현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이 파괴된 집단 영성의 치유자로서 임재된 것이다. 그 사역의 본령이 오순절 성령강림 첫 번째 현상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방언이다. 저자 누가가 바로 이 방언을 어떤 도상 속에서 위치시켰는지가 그 본령의 열쇠다.

방언은 본래 모든 신령한 은사로 들어가는 드라이브와 같은 입구다. 체험한 사람만이 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이같은 귀납적 체험 현장을 바벨탑 도상과 맞춰 놓은 것은 전적으로 누가의 놀라운 통찰 덕택이다.

바벨탑은 최초의 리바이어던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탑을 쌓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가? 들리지 않았다. 망치를 달라고 하는데 흙을 건네고, 물을 달라고 하는데 불을 건네는 언어 파괴적인 리바이어던 현상과 오순절 성령강림의 방언의 은사 현상과 동치로 묶어 버렸다.

성령이 임하시니까 바벨탑이라는 리바이어던의 때처럼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전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는 바로 그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새 리바이어던 현상 속에서는 오로지 경건한 자만 들을 수 있다.

말(logos)을 통해 재구성되는 이 작업과 공정은 각 세대가 인공적으로 창출해냈던 리바이어던을 재형 해내는 전혀 다른 개념의 리바이어던 작업 공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공 혼, 인공 관절, 인공적 이성과 의지가 아닌 성령의 사랑의 법으로 다시 창조되는 과업. 이것이 바로 성령이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하시려는 일 즉, 새 리바이어던으로서 프락세이스(praxis, Acts)이다.



*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당시 교회권력에서 해방된 국가를 가리키며 또 그러한 국가의 성립을 논한다. 교회권력이 어떤 생명체로서 유기체에 훼방을 가하고 있다는 통찰로서는 같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바라는 리바이어던은 역시 또다른 권력으로서 재앙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미문(美門)에서 맞는 첫 성령강림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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