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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07 자기 인생을 핑계할 수 없음에 대하여
  2. 2012.05.04 섭생과 생식 능력
단상 속에서2012. 9. 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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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보인바 된 우리 겸손의 결핍, 기억의 결핍, 두려움의 결핍 등이 우리 앞에서는 보인바 되지 않는, 불가피한, 그렇지만은 그것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보인바 되는 (우리의) 자연스러움이다.

하나님의 그 모든 불가사의한 피조물 - 예컨대 동물원으로서 이 세계? - 우리가 답은 갖고 있지 않은 그 수많은 문제들은 무엇인가? 그러나 하나님 한 분, 하나님 그분 자신, 그분만이 그 대답이시다.

차분하고도 진정한 편견 없는 신심을 통해 그 신성한 “부정하심,” 곧 거절하심의 응답은 확립될 수 있는 것이며 또 이해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저지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께 폭로 됨에서 오는 그 건강한 “위기” 속으로 우리 존재를 운반해오는 일을 저지할 수 있는 것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반론할 여지가 없는 실체 곧, <확실히 보인바 된 그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타내지 않으심>이다. 예를 들면 부활이다. 그것이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영원하신 권능과 신성”(롬 1:19)인 것이다.

이것이 말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이야 말로 우리에게는 그분에 대해 알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 우리는 그분이 될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그분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 그 이유 말고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여기에 모든 신들을 뛰어넘는 그분의 탁월함이 드리워져 있다. 여기에 하나님으로서, 창조주로서, 그리고 구세주로서(롬 1:16) 그분의 기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심판대 아래 이미 서 있던 이들에게는 노출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그 심판을 알 수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사랑한다고 했었다.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롬 1:20)인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보는 데 실패하고 듣는 데 실패한 데서 비롯된다. 보는 눈을 가지고 듣는 귀를 가지고서 그들은 그들 할일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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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talogia
상상 속에서2012. 5. 4. 06:18
Aristotle은 생물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존재를 만드는 섭생과 생식 능력을 영속적이며 신적인 것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으로 보았다(c.f De Anima 415a:25).

그러나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비슷한 자기 존재들을 인공적으로 낙태시키는 방법을 구사함으로써 스스로 신적 능력을 거부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기술을 이용하여(공학 따위의)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존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신적 권능에 도전하고자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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