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속에서2012. 6. 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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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려는 계획을 이미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려는 뜻으로 간주하셨다(삼상 8:6-9). 게다가 왕의 제도를 요구한 것은 사실상 사무엘 일가의 세습을 반대하는 요구에 기반하기 때문에(8:5) 사무엘 입장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된 재앙이라도 내렸으면 체면도 세우고 좋았을 법하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한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참 목자상을 발견한다.

화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화목 시키는 사무엘상(像).
그리고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상.

그러나 우리는 이것만 가르치고 배워왔다.
어차피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는 “사울,”
어차피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는 “다윗,”
무시무시한 순종을 요구하는 “사무엘,”
끝으로,
다윗과 사무엘과, 그리고 내 편만 드는 “하나님.”

위의 본문이(삼상 11:14-15) 성서가 말하는 “새로움”의 모체 중 하나이며,
흔히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부여하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란 칭호에 대한
모상(模像)이기도 하다.

“새로움”은 화해 속에만 존재한다.
화해 밖에 있는 것은 새로움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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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talog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