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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9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것
말씀 속에서2014. 1. 1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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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사 49:1-3)

이와 같이 한껏 용기를 북돋는 선포를 받고도 이스라엘의 응답은 다음과 같다.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사 49:4)


이러한 소회는 구원의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간혹 침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 신앙 일상과 닮았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어떤 목적(물)이 좌절 되었을 때에 주로 그렇지만 진정한 불행의 인식은 자신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를 때에 심화되게 마련이다. 


불행은 어떤 한 사물이나 사람, 혹은 환경으로 인해 닥치는 ‘요인’이지만 그것이 오래 지속되거나 중복될 때 우리는 인식의 미아가 되고 그렇게 되고나면, 앞서 좌절의 그 원인은 사라지고 ‘불행’이라는 상태만 남는 원리이다. 


즉 자신의 시작, 중간, 끝, 이들 세 매듭을 놓친 것입니다.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회개이다. 회개는 우리가 잠긴 인식의 마비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그것이 첫 번째 관문이라는 점에서 - 이다. 회개는 일종의 급전(unexpected)이기 때문이다. 돌이킴이기 때문이다. 시작과 중간과 끝의 방향감각이 없어 인식의 미아가 된 상태에서 방향감각을 무엇으로 복원할 수 있겠는가? 돌이킴 아니겠는가


다음은 창조이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는 과학에서 말하는 식의 창조가 아니라 - 지구과학, 생물학 같은 - 모태의 기억으로서 창조를 말한다. 예컨대 어머니의 태중에서 안락함이나, 어머니 품속에서의 안락함은 같은 것이다. 또 성인이 되어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을 때의 안락함도 같은 회복력이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태어나기도 전부터 “알았다”, “지으셨다”는 사실의 인식으로써 안락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때 비로소 좌절을 철회할 힘도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기원을 인식해냄으로 생명을 회복할 수 있는 원리이다. 



에필로그 |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난(begotten) 사람일 때 가능한 얘기이다.



[* 포인트: 우리의 침륜이 회복될 때 아무것으로나 회복하는 게 아니라 <창조>로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에 관한-]


2014.1.19일자 |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것. | 사 49:1-7, (cf. 시 40:1-11;  고전 1:1-9; 요 1: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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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talog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