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1.13 우리 목사님은 좌파일까? 우파일까?
말씀 속에서2014. 1. 13. 12:51

 

저장소를 이동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우리 목사님은 좌파일까? 우파일까? 이 시대 목사에게 자신의 이념 정체성을 명확히 밝히는 일은 일종의 커밍아웃에 준하는 부담스런 일일 것이다. 자기 교회 신도 절반은 잃을 테니-


나의 경우는 이념성애자에 가까운 어떤 목사들이 성령세례 보다는 자신이 받았던 이념세례를 더 추앙하면서도 정작 자기 목회에서는 자본적 양식에 철저한 것을 눈뜨고 보기 힘들어 하는 편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우경향의 목사가 확실하지만, 반대로 설교에서 공공연하게 “한나라당 안 찍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떠벌이는 부흥강사 데려다 강단에 세우는 멍청한 교회나 목사 또한 전자만큼 혐오하는 것도 사실이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것은 라틴의 교황이지만 그 전쟁을 선동하고 돌아다닌 것은 일종의 전도자 즉 부흥사들이었다. 이때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 십자군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약탈>을 보장 받았다.


믿음이 충만한 이들은 대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이등의 기사계급, 장사꾼, 기근에 쩔은 일반 계층.., 등등 모두가 ‘결핍과 이익을 신앙으로 승화시킨’ 부류들이었다. 이 시대처럼.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마 학살일 것이다. 이슬람교도뿐 아니라 유대인까지 학살했다. 이슬람교도를 아무런 가책 없이 식량으로 사용한 보고도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이들은 같은 그리스도교 국가 콘스탄티노플까지 점령해 들어가 라틴 교회 십자가를 꽂았다. 그것이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나는 내가 지닌 역사관으로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최근 비평해본 일이 있는데, 일개 목사로서 아마추어적 중도 사관을 십자가 정체성으로 치환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참조 https://www.facebook.com/pentalogia/posts/702813303084425)


우리 목사님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십자군 전쟁의 결과를 <르네상스>로 진입하게 된 계기로 치적하는 것은 마치 일제 강점기 덕에 우리가 근대 개화기로 진입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십자군 전쟁의 결과는 오로지 <안디옥 교회> 발상지였던 터키 땅의 99% 이슬람화로 관심한다.


지척에 있는 아르메니아는 99%의 그리스도교를 유지하고 있는데 왜 이 땅은 이슬람화 되었는가? 이슬람교(오스만)의 권능인가? 십자군의 십자가 권능인가?


안디옥 교회는 우리가 믿고 있는 스타일의 복음을 전해준 사실상 ‘처음 교회’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감시만 하고 앉았었다. 예루살렘 교회를 제외하고, 안디옥 교회를 필두로 하는 모든 초대 교회들이 교회를 재생산했다. 그런 안디옥 교회의 성지가 이슬람화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안디옥 교회의 땅(지금의 터키)이 이슬람화 되어서는 그리스도교 나라인 아르메니아에 박해를 가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약 150만 명 정도의 새로운 학살이 발생하였다.


안디옥 교회의 땅이 십자군에 짓밟힌 것이나 아르메니아 그리스도인들이 학살당한 것은 다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잔의 비극은 우리나라 4.3제주, 5.18광주, 6.25.., 크고 작은 모든 상잔의 비극과 같은 형식의 것이다.


우리 목사님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좌(左)와 우(右)는 정의에서 비롯된다. “자, 이리나와 정의의 칼을 받아라-”인 것이다.


성서 본문은 바로 그 정의(正義)가 깃드는 공간을 지목하고 있다. 그곳은 바로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이 있는 곳이다.


학도병 <이우근>과 <이승복>은 ‘남한의’ 순교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순교자이다. 우리 모두의 “상한 갈대”, 우리 모두의 “꺼져가는 등불”이었던 것이다. 그 순교자가 이우근인지 저우군인지, 이승복인지 저승복인지.., 그 진위를 밝혀내는 것만이 역사적인 작업은 아니다. “꺼져가는 등불”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공감하는 것이 더 역사적인 것이다. 그 갈대와 등불은 제주에도 있었고 광주에도 있었고, 안디옥 교회나 콘스탄티노플에도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갈보리 십자가 위에 달렸던 것이고-. 


토론의 달인이 된 파계승과도 같은 목사 아들이 유명인이 되어 TV에 나와 대개 이런 것을 ‘성급한 일반화’라고 가르치지만 이것은 성급한 일반화가 아니라 피값들을 다 톡톡히 치른 ‘보편화’이다. 결코 거저 된 게 아니다. 



에필로그 | 피가 중요한가 그 피의 혈액형이 중요한가.


우리 목사님이 좌파인가 우파인가를 알아내려면 그 목사가 그리스도의 피를 밝히려고 하는지, 아니면 그 피의 혈액형을 밝히려고 하는 지를 보고 분별할 수 있다.



* 2014.1.12일자 | 정의(正義)는 어디에 깃드는가. | 사 42:1-9, (cf. 사 42:1~9; 시 29; 행 10:34~43; 마 3:13~17.)

* 이미지 참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6444


[이 사진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p. 313에 이우근의 사진으로 실린 것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계절 등의 이유, 그리고 친족의 폭로로 이우근이 아니라 국군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말씀 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  (0) 2014.01.27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것  (0) 2014.01.19
남은 자(remnant) 인플레이션  (0) 2014.01.06
때(a time)가 있다.  (0) 2014.01.02
임.마.누.엘.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  (0) 2013.12.23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개별 복합 게시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Unported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Pentalog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