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에서2012. 10. 3.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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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론[唯心論], 유물론[唯物論] 강의를 위한 두 번째 영화로 <트루먼 쇼>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기독교인들은 아마 이 강도 높은 반신론적 코드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지만 그 코드를 되감아 도리어 신론에 종사시킬 수도 있다.


#1_ 트루먼은 우리처럼 반복적 일상을 살아간다. 앞집 부부를 만날 때 하는 인사도 같고, 가판대 신문/잡지를 살 때, 건널목을 지날 때, 항상 같은 사람, 같은 장면, 아무런 의심 없이 마주친다. 약간 의심스런 일들 몇 가지만 빼고는-.


#2_ 어느 날 맑은 하늘 위에서 별안간 무대 조명 하나가 뚝 떨어진다거나 - 거기엔 “시리우스(큰 개 자리 #9)”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 하늘의 비가 고장 난 샤워기처럼 내 머리 위에만 쏟아지거나, 행인들 중 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내게 달려든다거나.


#3_ 이 영화는 한 신생아를 방송국에서 입양하여 출생으로부터 전 생애에 이르는 과정을 생중계 하는 리얼TV 프로그램이다. 그 신생아는 물론 트루먼이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미 시청자들이 시청해 왔으며, 트루먼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세트장 스튜디오 세계에서 살아간다. 

#4_ 하늘에서 떨어졌던 조명등은 별자리 역할을 하던 9번 조명이었고, 비가 그에게만 퍼부었던 것은 비 내리는 기계가 잠시 고장 났던 것이며, 달려든 행인은 엑스트라로 참여했던 일반인이 트루먼을 보고 너무 좋은 나머지 달려든 것이었다.


#5_ 그렇게 전모가 서서히 드러난다. 엄마도 가짜고 대학시절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아내도 가짜이며 친구도 가짜다. 그들 모두 배우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막연한 의구심 속에서 트루먼은 짜인 프로그램을 삶으로 살아갈 뿐이다. 우리들 모두가 그런 것처럼.


#6_ 특히 바다와 배는 그의 강한 트라우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배를 타다 그만 아버지가 물에 빠져 죽었을 때 생긴 심리적 장애다. 이후 물에 잠긴 쪽배만 봐도 멀미가 난다. 아예 ‘바다’라는 생각을 거세시켜 바다엔 얼씬도 못하게 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트라우마의 정체란 ‘만들어지는 것임’을 폭로한다. 


#7_ 하지만 아버지 역시 배우였다는 사실을 트루먼만 모른다. 


#8_ “바다”가 프로그램 된(programmed) 그의 트라우마라면 옛 여자 친구 실비아가 남기고 간 추억과 말들은 일탈을(unprogrammed) 가르치는 의심이다. (“모두 너에 대해 알고 있어. 모르는 척 할 뿐이지, 알겠어? 다들 널 알고 있어!”라는 힌트를 던져주고는 아버지[다른 배우]에게 붙잡혀가버린 그녀를 다신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믿음>은 트라우마요 <의심>은 트라우마를 벗어날 유일한 희망인 셈이다. 


#9_ 어느 날 라디오 채널에 잡힌 방송국 스텝들 간의 무전기 소리를 들으면서 그동안 우연인줄만 알았던 모든 사건들을 재구성해내고는 드디어 확신한다.

#10_ 여성 잡지 모델들의 눈․코․입 사진조각들을 오려붙여 옛 여자 친구 실비아의 얼굴 꼴라쥬에 성공해낸 것처럼 이제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11_ 트라우마 엄습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일한 탈출구 바다로 향한다. 


#12_ 비상이 걸린 방송국은 더 이상 은밀하지 않게, 노골적으로 그 위용을 드러낸다. 아직 새벽 시간인데도 해를 중천에 띄우고, 바다의 달은 이미 그를 찾아 움직이는 서치라이트로 변해있다. 그를 찾아낸 프로그램 PD는 풍랑을 내보내고 그 수위를 점점 높여 생명을 위협한다. 

 

#13_ 이런 사태가 그대로 생방송 되고 있는 가운데 시청자들은 트루먼을 응원한다. 그가 극복하고 떠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14_ 이러한 교감은 어느새 최종 관객인 우리를 향해서도 자기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던 일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직시할 것을 촉구한다. 억압하던 일상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으며 억압하는 인맥은 정략적 배우에 불과하다며 선동한다.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 부추기는 것이다.


#15_ 목숨을 위협해도 굴하지 않자 PD는 풍랑을 멈추고 직접 마이크를 붙잡는다. 그 사이 트루먼의 배는 고요해진 바다를 떠가다가 ‘쿵-’ 소리와 함께 뭔가에 부딪친다. 지평선, 아니 벽에 그려진 지평선 그림에 부딪친 것이다. 그 때, 구름이 반쯤 가린 창공의 태양 속에서 그동안 숨어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16_ “트루먼.., 얘기 하게. 다 들리니까.” “누구시죠?” “난 수백만 명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프로를 만들지.” “난 누구죠?” “자넨 스타야.” “전부 가짜였군요.” “자넨 진짜야.” “내 얘기 들어.”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지만... 내가 만든 이곳은 다르지.”


#17_ 이쯤에서 우리는 이 목소리는 더 이상 PD가 아닌 어떤 신(神) 존재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린다.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게 없어” “난 누구보다 자넬 잘 알아.” 트루먼이 외친다. “헛소리 집어 치워요.” 신의 음성이 계속된다. “두렵지? 그래서 떠날 수 없지?” “괜찮네.” “다 이해해.” “난 자네 인생을 지켜봤어.” “자네가 태어나는 것도, 첫걸음마를 떼는 것도.” 


#18_ 이제야 우리 최종 관객들은 트루먼을 부추기는 저 목소리가 단지 자아회복이라는 권고를 넘어선, 아예 그 주신(主神)을 극복하라는 지령에까지 닿아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트루먼은 더 이상 트루먼이 아니라 신을 배격하라는 지령을 받는 그 모든 자들의 군상이다.


#19_ 트루먼의 출생도 생방송했으니 사망도 생방송 할 권리까지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탐욕에 찬 PD는 우리에게 과중한 프로그램을 강요했던 신일뿐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20_ 우리는 여기에서 그 선동의 목소리 이면에서 진정한 목소리 하나를 더 추출해낼 수 있다. 이 신은 도대체 어떤 신인가-? 라는 반문이다.


#21_ “두렵지? 그래서 떠날 수 없지?”라고 묻는 신. 스튜디오에 가두어 놓고서는 자유라고 가르치는 신. 트라우마를 심어 놓고선 그것으로 협박하는 신. 또한 만들어진 트라우마를 <믿음>이라고 가르치는 신. 그 신은 과연 누구인가?


#22_ 우리가 믿어온 신을 한낱 오만과 탐욕에 젖은 프로듀서 정도로 교훈하려고 시도하는 지령을 배격하고, 실상 우리가 믿어온 신은 도리어 저 그림으로 된 지평선 장벽 바깥 세상에 있음을 이 영화에 은폐된 파라독스가 기도(企圖)한다.


#23_ 우리는 프로그램 된 트라우마를 <믿음>으로 가르치고, 프로그램 밖 진정한 믿음을 도리어 <의심>이라고 찍어 누르지는 않는지. 


#24_ 진정한 믿음이 스튜디오 바깥인지 안인지, 그리고 어떤 신이 참된 신인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신의 얼굴에 대한 개개인의 꼴라쥬 능력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25_ 스튜디오 바깥에서 생방송에 갇힌 트루먼을 보면서 실비아가 기도하는 장면이 하나 나온다. “(트루먼을) 도와주세요-” 굳이 지목하자면 그가 바로 스튜디오 바깥에 계시는 신이다.


#26_ 트루먼은 언제나 그가 일상 속에서 인사했던 방법대로 그동안 자신을 길러준 프로듀서에게 작별을 고한다. “못 뵐지 모르니깐 한번에 인사드리죠. Good afternoon, Good evening, Good night!”


(* 이 영화는 스튜디오 밖과 안을 어떤 구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유심론[唯心論] 혹은 유물론[唯物論]과 연결 지어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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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속에서2012. 7. 9.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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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마지막 잎새

워싱턴 광장 옆 그리치니라는 주택가는 집값이 싸 화가 촌이 자리 잡은 곳입니다. 어느 해 겨울 그곳에 폐렴이 나돌아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습니다. 몸 쇠약한 화가 존지도 이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쇠잔한 그녀는 창밖의 담쟁이를 바라보며 그 잎들이 모두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도 꺼져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녀가 겨울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그녀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친구 수우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병간호 하느라 의뢰받은 그림을 기간 내에 그릴 수 없던 차 수우는 아래층 화가 노인 베어먼을 모델로 청하면서 그에게 존지 이야기를 건넵니다. 명색만 화가였지 별 볼일 없는 그 노인 역시 병약한 그녀의 망상을 꾸짖습니다.
단풍잎들이 하루하루 떨어져 드디어 마지막 한 개가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병마와 싸우는 마지막 고비의 긴 밤을 넘긴 존지는 다음 날 밖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전히 한 개만은 지지 않고 있던 것입니다. 곧이어 베어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풍잎이 질 것이라고 말한 그날 그가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담벼락에 잎을 그려놓았던 사실도 알게 됩니다. 믿음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희망과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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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서플 | 두 종류의 믿음

반도(半島) 특성상 1,000여 회에 가까운 외세침입을 받아 왔던 우리나라만큼이나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인들 역시 바람 잘 날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크게 다섯 제국으로부터 - 앗수르 제국(지금의 이라크 북쪽지역), 바벨론 제국(이라크 남부), 페르시아(이란), 헬라(희랍 중심), 그리고 로마 제국 - 침탈을 겪습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에 그들이 시도했던 문화 삭제의 잔상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성서적 이스라엘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이 성서만큼 미치지 못하는 현상은 그들의 오랜 침탈 기간을 반증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역사에서 삭제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했던 그들을 다시 살려낸 건 어디까지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상황 속에서 믿음은 두 가지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희망’이라는 형식입니다.

패망하여 나라도, 가정도, 성전도 모두 파괴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모든 것들이 무산되어 버렸는데도 몇몇은 그 상황을 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당초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약속들이 진정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지를 거듭 묵상하고, 또 그 묵상을 통해 반성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믿음 즉 ‘희망’을 발견하고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둘째는 ‘절망’이라는 형식입니다.

모두가 희망을 선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쇠락해가는 상황을 바라보며 하나, 둘...., 무너져 내리는 낙엽의 개수를 세는 듯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마치 그 잎새들, 특히 마지막 잎새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희망처럼 마음에 깃들지만 명확하게도 그것은 ‘절망’입니다. 저 잎들이 다 떨어져버리고 나면 “난 더 이상 살지 않겠노라.”는 <시한부 신념>을 기저로 갖기 때문입니다. 신념은 체념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시한이 지나면 산화해버리고 맙니다.

셋째, ‘없어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없어질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깨뜨리거나 부술 수 있는 게 아니며, 녹이거나 불처럼 끌 수 없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없어질 것’들은 애당초 믿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에필로그 | 절망이라는 믿음의 형식이 아닌 희망이라는 믿음의 형식으로 

우리나라가 이 시대에 쓰임 받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과 같이 우리 민족의 믿음을 보신 것이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또한 여러 번 없어졌던 나라였는데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은 다 그 믿음의 덕택입니다. 많던 잎사귀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가듯이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하나, 둘..., 사라져갔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야고보, 다대오,... 바울도 죽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친 믿음이 여전히 우리 속에서 살아 숨 쉽니다. 이 믿음의 형식에서 바로 영생의 개념이 산출된 것입니다.

미문(美門)교회 11시 예배 설교요지
2012년 7월 8일 성령강림 후 제6주
본문, 고후 1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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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속에서2012. 5. 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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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믿음은 같지만, 신뢰가 좀더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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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or : You are a Christian, aren’t you, son ?

Student : Yes, sir.

Professor: So, you believe in GOD ?

Student : Absolutely, sir.

Professor : Is GOD good ?

Student : Sure.

Professor: Is GOD all powerful ?

Student : Yes.

Professor: My brother died of cancer even though he prayed to GOD to heal him. Most of us would attempt to help others who are ill. But GOD didn’t. How is this GOD good then? Hmm?

(Student was silent.)

Professor: You can’t answer, can you ? Let’s start again, young fella. Is GOD good?

Student : Yes.

Professor: Is satan good ?

Student : No.

Professor: Where does satan come from ?

Student : From … GOD …

Professor: That’s right. Tell me son, is there evil in this world?

Student : Yes.

Professor: Evil is everywhere, isn’t it ? And GOD did make everything. Correct?

Student : Yes.

Professor: So who created evil ?

(Student did not answer.)

Professor: Is there sickness? Immorality? Hatred? Ugliness? All these terrible things exist in the world, don’t they?

Student : Yes, sir.

Professor: So, who created them ?

(Student had no answer.)

Professor: Science says you have 5 Senses you use to identify and observe the world around you. Tell me, son, have you ever seen GOD?

Student : No, sir.

Professor: Tell us if you have ever heard your GOD?

Student : No , sir.

Professor: Have you ever felt your GOD, tasted your GOD, smelt your GOD? Have you ever had any sensory perception of GOD for that matter?

Student : No, sir. I’m afraid I haven’t.

Professor: Yet you still believe in Him?

Student : Yes.

Professor : According to Empirical, Testable, Demonstrable Protocol, Science says your GOD doesn’t exist. What do you say to that, son?

Student : Nothing. I only have my faith.

Professor: Yes, faith. And that is the problem Science has.

Student : Professor, is there such a thing as heat?

Professor: Yes.

Student : And is there such a thing as cold?

Professor: Yes.

Student : No, sir. There isn’t.

(The lecture theater became very quiet with this turn of events.)

Student : Sir, you can have lots of heat, even more heat, superheat, mega heat, white heat, a little heat or no heat. But we don’t have anything called cold. We can hit 458 degrees below zero which is no heat, but we can’t go any further after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cold. Cold is only a word we use to describe the absence of heat. We cannot measure cold. Heat is energy. Cold is not the opposite of heat, sir, just the absence of it.

(There was pin-drop silence in the lecture theater.)

Student : What about darkness, Professor? Is there such a thing as darkness?

Professor: Yes. What is night if there isn’t darkness?

Student : You’re wrong again, sir. Darkness is the absence of something. You can have low light, normal light, bright light, flashing light. But if you have no light constantly, you have nothing and its called darkness, isn’t it? In reality, darkness isn’t. If it is, well you would be able to make darkness darker, wouldn’t you?

Professor: So what is the point you are making, young man ?

Student : Sir, my point is your philosophical premise is flawed.

Professor: Flawed ? Can you explain how?

Student : Sir, you are working on the premise of duality. You argue there is life and then there is death, a good GOD and a bad GOD. You are viewing the concept of GOD as something finite, something we can measure. Sir, Science can’t even explain a thought. It uses electricity and magnetism, but has never seen, much less fully understood either one. To view death as the opposite of life is to be ignorant of the fact that death cannot exist as a substantive thing.

Death is not the opposite of life: just the absence of it. Now tell me, Professor, do you teach your students that they evolved from a monkey?

Professor: If you are referring to the natural evolutionary process, yes, of course, I do.

Student : Have you ever observed evolution with your own eyes, sir?

(The Professor shook his head with a smile, beginning to realize where the argument was going.)

Student : Since no one has ever observed the process of evolution at work and cannot even prove that this process is an on-going endeavor. Are you not teaching your opinion, sir? Are you not a scientist but a preacher?

(The class was in uproar.)

Student : Is there anyone in the class who has ever seen the Professor’s brain?

(The class broke out into laughter. )

Student : Is there anyone here who has ever heard the Professor’s brain, felt it, touched or smelt it? No one appears to have done so. So, according to the established Rules of Empirical, Stable, Demonstrable Protocol, Science says that you have no brain, sir. With all due respect, sir, how do we then trust your lectures, sir?

(The room was silent. The Professor stared at the student, his face unfathomable.)

Professor: I guess you’ll have to take them on faith, son.

Student : That is it sir … Exactly ! The link between man & GOD is FAITH. That is all that keeps things alive and moving.

P.S.

I believe you have enjoyed the conversation. And if so, you’ll probably want your friends / colleagues to enjoy the same, won’t you?

Forward this to increase their knowledge … or FAITH.

By the way, that student was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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