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속에서2012. 4. 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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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슈퍼맨

어려서부터 공상과학 소설에 빠져 살던 두 친구가 만화를 만들었습니다. 글을 주로 쓴 친구는 주인공에게 자기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입혔습니다. 좋아하는 여성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자기를 닮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초능력자입니다. 가슴에는 역삼각형의 S자를 새겨줬고, 악당들과 싸울 땐 더 멋져 보이라고 망토도 달아줬습니다. 그림을 맡은 친구가 모든 걸 멋지게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을 알아주는 출판사가 없었습니다. 번번이 퇴짜를 맞자 상심한 나머지 그림을 몽땅 찢어 불태우고 다시는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 하다가 Detective Comics라는 한 출판사 잡지를 통해 간신히 빛을 봅니다. 그 해가 1938년입니다. 처음에 이 회사 사장은 이 만화를 신통치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출판사가 이 만화를 표절하자 가치를 인지하면서 지면 할애를 늘렸고 평균 25만 달러였던 매출은 두 배로 늘어납니다. 그렇지만 원저자인 두 사람은 회당 500달러밖엔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주인공 캐릭터 저작권까지 같이 넘긴 바람에 훗날 이 캐릭터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했음에도 둘에게는 별 소득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회사와 소송을 거듭하다 전 재산까지 날리게 됩니다. 후일 만화계의 설득으로 회사로부터 소정의 연금도 받고 책에 이름이 나올 정도로 명예도 회복되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만큼 부를 거두진 못하고 죽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그렸던 친구 조 슈스터는 1992년 78번째 생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고, 글을 썼던 친구 제리 시겔은 4년 후 LA에서 82세 나이로 그 뒤를 따릅니다. 이 만화책 주인공이 바로 슈퍼맨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슈퍼맨은 이들 자아가 담긴 원작 위 에 여러 사람의 갈망이 덧입혀진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린서플 | 버린 돌

누군가를 고대하는 대망(待望) 사상은 모든 민족이 지닌 보편적 사조입니다. 인도의 하누만 이야기를 리메이크 했던 중국의 서유기 주인공이 돌에서 태어난 것처럼 우리나라 동(東)부여의 왕 금와(金蛙)도 돌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판 손오공인 슈퍼맨마저 운석, 즉 돌을 기원으로 합니다. 서로 물리적 교류가 가능한 범위 내의 지역 문화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저히 교류가 불가능한 지역 간 문화 속에서도 이러한 사조가 보편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그 대망에 응할 누군가가 실제로 정말 존재한다는 객관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돌이 “버려진 돌”이라는 역설로서 그 돌의 진위를 가려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돌입니다(행 4:11; 벧 2:7b; 시 118:22).

세상이 대망하는 돌은 최후에 가서는 사람들의 환호와 영광을 한 몸에 받는 돌이지만 이 돌은 최후의 순간까지 도리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서 그 이야기가 완전히 종결됩니다. 그렇게 끝난 것을 하나님께서 땅 속으로부터 다시 꺼내 머릿돌로 쓰십니다. 

약속의 돌입니다(c.f. 창 28:18; 31:45).

다윗은 여느 왕들처럼 왕의 혈통에서 낳고 자라다가 등극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가 혁명을 통해 보좌에 올랐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울 왕과 사람들로부터 거부되면서도 끝까지 인내하다가 이스라엘을 통일해낸 인물입니다. 그의 고통이 시편 면면에 묻어나고 있으며 특히 118편 본문 속 <버린 돌>도 이때를 상징하는 시어(詩語)입니다. 이스라엘의 돌이 야곱의 베개였다면(창 28:11, 18) 그의 돌은 버려진 돌인 것입니다. 이 돌의 약속대로 대망의 예수께서 오셔서는 똑같이 <버린 돌>로서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며 그를 거부 했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

그 돌이 머릿돌 된 집에 의(義)의 문이 달렸습니다(시 118:19-24).

다윗 자신이 그러한 삶을 통해 실제로 아들 솔로몬 성전의 머릿돌 역할을 한 것처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를 대망하는 모든 민족의 머릿돌이 되어 주셨습니다. 오로지 그가 머릿돌로 계신 하나님의 집에만 의의 문이 나 있으며, 반대로 의의 문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집이기도 합니다.


에필로그 | 머릿돌

다윗은 혈통도 혁명도 아닌 방법으로 왕에 등극한 특별한 인물이지만 통치 과정에서 자신의 탐욕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었습니다. 왕으로서 그의 종말, 그리고 빛바래 스러져 가는 후손들로 얼룩진 그의 가계를 볼 때 그는 버려진 돌인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돌에 임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다시 숨을 쉬면서 모든 민족을 품는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미문(美門)교회 11시 예배
2012년 4월 29일 부활 후 제4주
본문, 행 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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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talog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