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속에서2012. 9. 3.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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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퍼스트 레이디

우리나라는 역대 대통령 10인이 있습니다. 그 곁에는 퍼스트레이디들도 있습니다. 세 분만 소개해보면, 우선 오스트리아인이셨던 프란체스카 여사. 대통령과 스물다섯 살 나이 차가 났지만, 전쟁기간 각 나라에 직접 영문편지를 써 구호품을 요청하는 등 대통령 비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셨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구호품이 그녀 고국에서였다고 합니다. 작고(作故) 시에는 아주 낡은 한복이 유품으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영원한 국모’라는 칭호에 누구도 이의 걸지 않을 법한 육영수 여사. 청와대의 “귀”가 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고 합니다. 라디오를 목에 걸고 다니다시피 했으며 국내 발행 모든 신문, 심지어 발행 금지된 신문들까지도 모두 챙겨 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진보 매체에서조차 “청와대 내의 야당”이라 부를 정도입니다. 끝으로 그런 그녀를 롤 모델로 삼았다는 이순자 여사. 교육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새세대육영회와 새세대심장재단을 설립해 유아교육과 심장 수술 발전에 양적·질적 공헌을 많이 하였지만 정권 말 산속에 들어가 사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요약발췌,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10011> 

그러나 앞의 두 분 역시, 외국인이면서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이 땅의 기억 속에서 스러질 때까지 머물러야만했던 점, 혹은 난데없는 총탄에 스러져야만 했던 삶이었다는 점에서, 모두 한 여성으로서는 과연 얼마나 행복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프린서플 | 왕의 여인들

아가(雅歌)서는 도대체 그 기능이 무엇인지, 왜 성경에 편입되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의견이 분분합니다. (1) 고대근동의 성적인(sexual) 제의 문서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2) 유대인들의 문서들 중 자투리 정도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이 문서는 (3) 거룩한 중에서도 거룩한 문서라는 랍비들의 판단에 의거하여 약 이천년 전에 정경에 들어오게 됩니다. 

오늘 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글이 솔로몬에 의해 직접 작성되었다고 보지 않는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최고의 지위를 가진 <남성>이 <여성>에 관해 적은 글이라는 사실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여인이 누구인가 라는 점은 이 문서를 읽는 우리의 여전한 적용점입니다. 세 명의 여성상을 제시하겠습니다.

첫째, 미갈.

미갈은 사울의 둘째 딸입니다(삼상 14:49). 다윗을 사랑하되 그의 신앙과 영성을 좋아했습니다(18:20, 28). 그녀가 아니었다면 다윗은 아마도 사울에게 죽었을지도 모릅니다(19:11, 14-15, 17). 다윗을 좋아하지 않은 아버지 사울이 다른 남자에게 아내로 줘버리기도 하지만(25:44) 다윗이 그녀를 아내로 다시 데려와 정혼했던 그 책임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윗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삼하 6:16; 대상 15:29). 에봇만 입고 춤추는 다윗을 지적한 것은 그 마음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둘째, 아비가일.

아비가일은 미련한 어떤 남성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이 그 남성의 가산을 지켜줬지만 그는 오히려 악담을 퍼부은 일로 화가 난 다윗이 그를 치러 오자 아비가일이 다음과 같은 말로 다윗을 말립니다. “...내 주의 손으로 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야웨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 사람이 일어나...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야웨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야웨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향후 이 여인의 전 남편이 죽자 다윗이 데려다 삽니다.

셋째, 밧세바.

다윗과의 만남의 시작이 시사하듯 밧세바는 가장 관능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들 솔로몬이 왕위 승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완도 지녔습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그녀의 관능적 외모가 오래간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에필로그 | 왕의 마지막 신부, 교회

교회는 속성적으로 여성성(性)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성상(像)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갈처럼 정열적이어야 할까요, 아비가일처럼 말을 잘해야 할까요, 아니면 밧세바처럼 관능적이어야 할까요? 아가(雅歌)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무조건 아름다워야(美) 합니다! 

그것은 플로(plot)으로 아름다운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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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talogia